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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NOV 28, 2022
나만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일상 : 이정미
LEE JUNGMI
언디스코가 만난 다섯 번째 이야기. 제주도에서의 일상을 그려내는 농부의 아내이자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 이정미를 만났다.안녕하세요. 제주도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제주는 지금이 두 번째인데요. 2001년도에 와서 한 2년 반 살다가 이후 10년 동안은 육지에 있었고요. 이번에 다시 와서 살게 된 게 10년째 되는 것 같아요.그림과의 인연은요?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시작했어요.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었는데 피아노를 먼저 시작하게 됐어요. 피아노가 너무너무 하기 싫더라고요. 근데 그림은 좋았어요. 어려서부터 맨날 종이 인형 같은 걸 만들고 노트에 그림 그려가면서요. 나중에 스무 살 넘어서는 그런 식으로 옷도 해 입고요. 어쨌건 그렇게 그림을 되게 좋아했죠. 그렇게 좋아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이후에는 미술 대학을 갔고 돈을 벌고 싶어서 직장을 다녔죠. 디자인 회사를 다니다가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뒀어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집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그렸어요. 제주도로 와서도 그런 게 쭉 이어졌죠. 남편이 그림을 그리니까 옆에서 같이 그리기 시작했어요. 어떤 그림을 추구하면서 그리고 계신가요?자연스러운 걸 그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남편이 등긁개로 등을 긁는 모습, 아니면 집에 개나 고양이하고 아이들이 교감하는 그런 모습들 있잖아요.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 또 밭에 농사를 하니까 벌들이 많고 또 거미가 많아요. 그런 장면은 여기서 실제로 살지 않으면 경험하지 못하죠. 여기서 나만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걸 그리는 게 저는 재밌어요.그림을 그리실 때 특별히 사용하는 기법이나 방법이 있나요?저는 동양화 기법으로 계속 그리고 있어요. 그런데 남편이 제게 알려준 게 있어요. 그림이라는 것은 동양화, 서양화가 아니라 네가 표현하고 싶은 모습을 너의 방법대로 그려내는 것이라고 말해줬죠. 다른 게 그런 그림이 제 그림이 된다는 남편의 말이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줬어요. 입시를 준비하면서 제가 배운 것에서는 터치나 물 번짐 이런 게 굉장히 기술이나 테크닉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여서 제가 범접할 수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태양 위치에 따른 빛과 그림자를 생각하고 그걸 그리는 게 굉장히 어렵기도 했고요. 남편이 네가 보이는 대로 표현하라 했을 때 용기를 얻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제 방식대로,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게 재밌어요.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내가 이걸 어떻게 했지' 해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요. 자그만 작품이지만 그림 하나 그릴 때의 그 과정을 보면 제가 이걸 어떻게 했는지 생각하게 돼요. 좀 신기한 게 있어요. 소재가 좀 독특하다고 느껴졌어요.일단 종이에서 차도가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쓰는 수채화 용지가 물감을 표면 위에 이렇게 그냥 바르는 느낌이라면 물감을 먹는 종이가 있더라고요. 그게 100% 면인데요. 동양화에서 쓰는 장지라는 종이가 있어요. 동양화는 굉장히 먹 번짐이 심하잖아요. 그래도 먹어버리거든요. 종이에 먹이 스며들고 그 위에 계속 덧칠하고 덧칠할 때 그 깊이감이 생기죠. 그런 기법이 수채화에도 있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수채화라고 하면 보통 맑고 깨끗한 느낌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아리쉬라는 종이가 동양화의 종이와 닮았다는 점이 저의 작업에 큰 장점이 됐어요. 수묵화에서 사용되는 갈필 이런 것도 충분히 지금 쓰고 있는 종이로도 제가 가지고 있는 배운 작은 기법들을 표현할 수 있어서 굉장히 재밌어요. 서양화와 동양화를 조금씩 가져와서 작업을 하시는 것처럼 보이는데 조금 더 듣고 싶어요.서양화에서 수채화, 유화 이렇게 나뉘는 것처럼 동양화에서도 수묵화, 수묵 담채, 진채 이렇게 나뉘어요. 진채는 유화랑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속 덧칠할 수 있으니까요. 수채화는 수묵화, 수묵화를 할 때는 한 획으로 긋거나 또 수정이 안 되잖아요. 수채화도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수묵 진채 기법으로 덧칠을 하기도 하고요. 다 활용도가 있어요. 제주라는 곳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시는지도 궁금해요.저는 일단 흙에 대해서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흙은 정말 생명이구나' 놀라워요. 시멘트 바닥에 씨를 떨어뜨리면 씨는 죽죠. 밭에는 씨가 떨어져도 죽지를 않아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정말 너무 신기해요. 그 씨 안에 모든 유전자가 들어 있다는 게 정말 정말 너무 신기해요. 저는 여기서 흙이 살아있구나, 씨가 생명이구나 이거를 정말 배웠어요. 피부를 느꼈죠. 깻잎 씨 같은 것들이 정말 작거든요. 진짜 너무 너무 재밌어요. 그런 씨앗이 싹을 틔우고 새순이 나는 그 과정이 정말 너무 재밌어요. 갑자기 농사 얘기가 나왔는데 그런 경험들이 너무 재밌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제 그림에도 다 영향을 미치기도 하죠.앞으로의 계획을 여쭤보면서 이야기를 마쳐야 할 것 같아요.아이들이 다 출가했어요. 그리고 집에는 남편과 저와 강아지 개 세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어요.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제 자신에 대해서 많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리고 싶을 때까지, 하나님이 멈추라고 할 때까지 계속할 거예요.
Interview
NOV 10, 2022
선으로 긋는 한계와 가능성 : 이동수
LEE DONGSU
손을 놓을 때 완성되는 그림 : 이동수Hogeun-Dong, Seogwipo-si, Jeju-do안녕하세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그림을 전공했고 서울에서 쭉 살다가 지금은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이동수입니다.주로 어떤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나요?옛날에는 추상 표현 계열의 작품을 주로 했어요. 추상 표현 계열이라고 하면 주로 잭슨 폴록이 있죠. 바스켓의 물감을 캔버스에 그냥 들이붓는 식이죠. 러시아의 화가 말레비치는 기하학적 도형만을 이용해서 추상계열 작업을 했고요. 제 작품은 그 두 개를 섞은 듯한, 그러니까 추상표현주의하고 기하학적 추상표현주의하고 섞어 그림을 그린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그림에 주로 표현하고자 하는 지향점 같은 게 있으실까요?인간의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요. 산이 어떻게 형성 됐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죠. 보통 산을 삐죽삐죽하게 그리는데 저는 산의 내면을 생각해봤어요. 밑에 마그마도 있고 돌도 있고 물도 있죠. 산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 그리고 그 물질들이 한 데 섞여있는 모양을 바탕으로 표현하려고 했죠. 그런 식으로 산을 이미지화 하는데 또 부분적으로 그런 요소를 사용하기도 했고요. 이 산이라는 작품을 보면 안에 마그마가 타는 듯한, 그런 와중에 또 선을 이용해서 기하학적으로 잘라냄으로 작품에 어떤 그 한계를 좀 주었어요. 그런데 그 한계를 끝까지 두기보다 또 선을 터주기도 해요. 한계를 터줌으로 상호 간의 어떤 교류라고 하는 것들을 좀 표현하기도 했어요. 생명의 기원이라는 작품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부터 생명이 싹 틀 때를 표현한 거에요. 성경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는 구절에서부터 시작했죠. 기독교인으로써 생명이 잉태하는 과정 그런 것들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어요.두 작품이 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닮을 수밖에 없는 게 과정이 비슷해요. 산이라는 작품은 잭슨 폴록처럼 물감을 막 뿌렸어요. 바닥에 캔버스를 넣고 뿌리는 거죠. 그런데 차이가 있죠. 잭슨 폴록은 오만 가지 색을 다 섞어가지고 무질서하게 뿌려진 것 가운데서도 리듬을 찾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그 무질서가 싫어서 나이프로 다시 평평하게 긁어버려요. 그리고 색감을 없애기 위해서 그 위에 까만색을 다 칠했어요. 그 다음에 롤러를 사용해서 색감 위에 요철을 주죠. 그 위에 다시 선으로 분할하는 작업을 하는 거에요. 그럼 산이나 생명의 근원 같은 크기가 있는 작품들은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시겠네요.네. 각각 100호, 80호 사이즈의 캔버스를 사용했는데, 저런 거는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게 되죠. 요즘에는 그럼 어떻게,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도 궁금해요.요즘에는 작업 공간도 없고 (웃음) 그래서 조금 작은 사이즈로 다 줄여가지고 그리고 있습니다. 수채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는데요. 수채화 작업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어디서든지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죠. 물감하고 붓만 있으면 그릴 수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수채화에 매력을 느끼는 중이에요. 본격적으로 또 그림을 그리게 되면 유화 작업을 다시 하겠지만요.제주도가 좋아서 내려오셨다고 하셨었는데, 제주도의 어떤 부분이 좋으셨어요?경상도에서 태어나서 국민학교, 그때는 국민학교였거든요. 국민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왔어요. 서울 은평구 쪽에서 살았죠. 서울에서 한 20년 이상을 살았는데 당시에 서울이 되게 추웠어요. 한강도 물이 땅땅 얼기도 했죠. 좀 따뜻한 곳에 가서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한테 물어보니까 제주도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따뜻하다고 그러더라고요. 어릴 때는 혼자 어디 가서 살 수 없으니까 크면 제주도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이후로 제주도 갈 기회가 없었어요. 유럽도 다 갔다오고 호주, 미국도 갔다왔는데 그러면서도 제주도는 와보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한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집사람하고 제주도를 한번 왔는데 여기가 바로 이 천국이구나 싶더라고요. (웃음) 내가 가본 어떤 곳보다도 제주도가 굉장히 이국적이고 또 사람 살기 좋다고 느껴졌죠. 제주도가 나한테 딱이라는 느낌이 든 그때부터 갑자기 제주도에 눌러앉게 된 거죠. 아무 연고도 없이, 무식하게 또 단순하게.그러면 선생님 작업하실 때 제주로부터 영감을 받으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영감은 제주도에서 정말 많이 받죠. 제주도는 첫 번째로 하늘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하늘이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도 생각하죠. 서울에서만 살다 보니까 매일 뿌연 회색빛 하늘만 바라보다가 제주도에 와서야 하늘이 있다는 걸 알았죠. 유럽도 하늘이 별로 안 예쁘거든요. 호주 정도 가면 좀 예쁘긴 하지만요. 근데 제주도 하늘이 너무 맑고 투명하고 밤에는 별들이 막 쏟아지죠. 하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바닷가를 갔더니 바다도 있는 거에요. 제가 바다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바다가 있으면 저는 무조건 뛰어들어요. 젊었을 때도 동해를 가면 갑자기 차 세워놓고 들어가 놀았죠. 제주도의 바다가 제 바다라고 그때부터 생각했어요. 그럼 여기에 정착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죠.그림에 그런 하늘이랑 바다가 딱 같이 나오는 게 이제 보이네요.네. 제가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하늘과 바다도 많이 그리고 있어요. 제가 또 물속도 좋아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물속도 그리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아까 인간의 탄생, 기원과 같은 네러티브를 가지고 작품을 그리셨다고 하셨는데, 그런 부분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사람은 누구든지 철학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어디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내가 왜 뭘 하고 있는가, 왜 화를 내고 있는가, 왜 기뻐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되잖아요. 또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 보니까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찾게 되는 거겠죠. 또 이 지구의 기원에 대해서 찾게 되는 거고요. 그걸 작품 세계 안으로 가져와서 표현하려다 보니까 뭔가 유기적으로 얽히고 설킨 그런 관계들을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그러면 생명의 어떤 기원이라든지 이 세상의 어떤 기원에 대해서 답을 얻으신 걸까요?답을 얻었다기보다는 이 땅에 일부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써 자유롭게 숨 쉬고 자유롭게 행동하면서도 또 나름대로의 규칙을 지키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살아가는 게 인간이 해야할 일이라는 정도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 지구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우리가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의 창조가 하나님의 소관이라고 믿으니까요. 이 세상에 관한 모든 창작 활동은 하나님이 다 해놓으셨다고 생각하죠. 우리를 창작하는 사람들이라고 얘기를 하지만 아무리 창작을 해도 제가 믿는 조물주의 창조성에는 비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림을 보면 검정색 색채가 많은 것  같아요. 농도의 차이도 있겠지만 다양한 깊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이런 것들을 어떻게 표현을 하시는지 방법이 궁금해요. 재료가 달라서 그런 걸까요?사실 검정색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색이에요. 제주도는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현무암은 전부 다 화산재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까맣잖아요. 까만 것 중에서도 덜 까만 것, 아주 새까만 것도 있죠.  그런 점들을 작품에 담아 내다 보면 또 그런 검은색을 찾게 돼요. 같은 검정색인데도 명도 차이가 조금씩 있죠.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명도 차이를 내기도 해요. 물감에 카세인을 섞어요. 하얀색 카세인인데, 돌가루라고 보면 돼요. 돌가루와 유화 물감 또 기름을 섞어서 사용하죠. 카세인을 많이 넣느냐, 적게 넣느냐에 따라 명도 차이가 조금씩 나게끔 하는 거에요. 어떤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우연의 어떤 과정들을 거치면서 만들어지는 건데, 그럼 결국 완성이라는 게 작가가 그리기를 멈추는 순간이 아닌가 싶어서요.그림을 그리다가 딱 여기서 멈춰야겠다라고 결정하는 기준을 가지고 계신가요?작가들마다 그런 기준은 있겠죠. 아무래도 끝까지 가다 보면 그림을 망쳐버리니까요. 특히 우연의 효과를 바라고 할 때는 어느 지점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가 또 감각적으로 내가 어필하고 싶은 걸 만들어냈는가 물어보죠. 그 순간에 멈춰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손은 계속 나가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근데 멈출 수 있을 때 멈춰야 하죠. 작업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옛날에는 그림을 그린다고 했는데 요즘은 그림 그리는 일을 작업한다고 표현 하잖아요. 왜 작업을 한다고 하는지 몰랐어요. 예전에는요. 우리가 건물 짓는 것도, 땅 파는 것도 작업한다고 하잖아요. 작업이란 게 대체 뭘까 생각해봤죠. 건물이 완성되기 전의 과정이 있잖아요. 결과를 내기 전 여러 과정이 있죠. 뭔가를 이루기 전의 단계에서의 일련의 행위를 작업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여기서 멈춰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본인만의 지침이라면 작품의 지금 상태에서 딱 오는 느낌으로 결정을 하시는 거라고 보면 되겠네요.그렇죠. 작품의 퀄리티는 본인이 제일 잘 알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퀄리티가 여기까지면 거기까지인 거죠. 작가의 역량이라고 볼 수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멈출 때를 아는 것도 또한 자기 작가의 역량일 수 있어요.요즘 특별히 관심을 두고 계신 주제가 있으신가요?요즘은 현대 미술이 거의 개념 미술 쪽으로 많이 가고 있다고 봐요. 개념적인 것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중요해지죠. 옛날에는 사진처럼 잘 그리는 그림이 인정 받았다면 요즘은 사진 같이 그리는 그림을 원하는 게 아니고 그 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 또 개념이 중요한 시대인 거죠. 저만의 개념을 정리해서 그림으로 또 화폭으로 나타내보고 싶어요.앞으로 향후 계획이 구체적으로 있으시다면 여쭤보고 싶어요.이제 앞으로 그림을 좀 꾸준히, 열심히 그려야 되겠다는 게 향후 계획이에요. 이때까지는 여러 갈래로 돌고 돌았어요. 그림 좀 안 그리고 놀 때도 많이 있었고요. 이제 죽을 때가 다 되어니까 이제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서 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작업을 함으로써 하나의 족적을 남기고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그의 이야기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리기를 멈추는 일이기도 하다. 더 그리고 싶은 손에 일부러 한계를 주어 멈추는 순간 그의 그림은 완성된다. 그가 작품에 기하학을 이용해 한계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돌고 돌아 다시 캔버스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는 그에게 여전히 제주의 바다가 있다. 그가 여지 없이 바다로 달려들어 감각했던 물속은 어떤 느낌일까. 그가 앞으로 그릴 물속의 이미지는 바다의 거친 파도 앞에서는 아무래도 발을 멈추게 되는 우리의 한계를 터줄 것이다.
Interview
NOV 04, 2022
자연의 색으로부터 나의 색을 찾는 일 : 장현승
JANG HYEONSEUNG
 제주도의 식물을 비롯해 제주도에서 구할 수 있는 염료를 가지고 천연 염색과 디자인을 이어가고 있는 장현승을 만나보았다. 그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20여 년을 보냈다. 우연한 기회로 천연 염색의 길을 들어섰으나 이제는 그 안에서 자신의 색을 구축하고 있었다.작품 철학에 대해서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지금 하시는 작업들이 자연주의에 기반을 두고 하시는 것 같아요.자연주의적인 미학을 확립하시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매염제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제주도에서 구할 수 있는 염료를 가지고 매염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색이 조금 깊은 색이 많이 나오죠. 개인적으로도 밝은 색보다 깊이 있는 색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철학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저는 화학적으로 얻어지는 매염제는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그런 색깔을 얻기 위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셨을 것 같은데요.많이 겪었죠. 굉장히 많은 실수도 했고요. 제가 일본에서 배웠을 때하고 염료 자체가, 식물도 마찬가지고. 여러 면에서 일본의 식물하고 제주도의 식물은 굉장히 많은 차이점이 있어요. 또 같은 우리 나라지만 각 지방을 다니면서 염색도 해보고 했는데, 제주도 식물하고 다른 지방의 식물하고 또 색이 달라요. 매염제를 정확한 양을 쓰면 같은 색이 나올 수 있을는지 몰라도 매염제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제 방식대로 했을 때는 굉장히 차이점이 많았어요.그만큼 뭔가 우여곡절이 많았겠네요.많았죠. 많았죠.비전공자로서 이 일에 도전하는 데 있어서는 또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해요.학교에서 배우진 않았지만 저를 가르쳐주신 스승님의 방법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매염제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 천연 염료를 가지고 사용을 했고, 특히 발효를 많이 시켜서 사용을 하셨어요.그럼 스승님한테 전수받은 기술들을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시는 거네요.그렇죠. 100% 라고 할 수는 없지만요. 선생님은 선생님 나름의 방식이 있고, 제 작업의 기본은 선생님의 가르침에서 다 나온 거죠. 그 후로 계속해서 나름대로의 그림을 그리고 있죠. 염색을 해서 단순히 옷을 해 입는 것 이상의 어떤 예술적인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는 중이에요.제주에서 나셔서 또 일본에 20년 가까이 지내신 후로 또다시 제주로 돌아오셨잖아요. 이렇게 거주지가 여러 번 바뀌고 여러 문화들을 경험하셨을 건데 그런 것들이 선생님의 작품 세계나 아니면 작업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을까요.처음에는 굉장히 일본 스타일이었는데 좀 벗어나고 싶었어요. 나만의 것을 추구하고 싶었던 거죠. 제가 원래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또 그 시대에는 대체로 자연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잖아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했고요. 옷도 좋아했고 그런 것들이 밑받침이 되는 것 같아요. 그 배경 안에서 나만의 디자인을 추구해왔어요. 아까 얘기했듯이 굉장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지금은 딱 보면 '이건 장현승의 염색이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내 것이 있는 거죠.본인만의 작품 세계관을 확립하셨다고 느꼈던 어떤 순간이 있으셨나요. 이제부터는 내가 이걸 내 작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하는.그거는 어느 순간에 탁 얻어지는 게 아니라 차츰차츰 쌓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연구를 해야 되고 앞으로도 또 시행착오가 많을 수도 있는 거고 또 내 생각이 어느 순간에 또 다른 쪽으로 바뀔 수도 있는 거고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부분을 그렇게 깊이 있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그때그때 이 염료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할 뿐이죠. 그렇게 계속 해나가면서 쌓이는 것 같아요.방법론적인 부분도 여쭤보고 싶은데요. 염색을 하시는 과정에서 네러티브나 아니면 주제나 의도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시는지 아니면 우연에 의해서 어떠한 결과물을 얻어내시는 경우가 많으신가요?목적을 갖고 하지 않으면 안 돼요.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뭐 아무렇게나 캔버스에 아무렇게나 그려나가지는 않죠. 자기 의도가 분명하게 있어야 되거든요. 그치만 천연 염색은 자연에서 얻어지기 때문에 원하는 게 100% 그대로 나오지는 않아요. 그대로 나오진 않지만 거의 근접할 수 있게끔 해요. '아 이걸 사용했을 때는 어떤 색이 나올 거야' 하는 식의 기대감도 있고 또는 지금까지 해오면서 여러 색을 추출해왔기 때문에 '아 이건 그 색이 나올 거야' 예상도 하죠. 그럼에도 색이 다를 수 있어요. 기대와 예상 사이에서 색을 찾아가요.말씀하신 것처럼 색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굉장히 많다고 알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날씨라든지, 어떤 염료의 컨디션이라든지.그런 것들에 대해서 데이터를 많이 가지고 계시겠어요.그렇죠. 그게 연륜이라는 거겠죠.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날씨, 소재, 염료 이런 것만 가지고 색이 달라진다고도 생각하진 않아요. 색은 작가 자신의 마음, 그런 것에도 굉장히 많이 좌우되거든요. 여러 가지가 일치되어야 하죠.선생님 작업 방식을 기사로 접했었는데 굉장히 오랜 공정을 거치는 걸로 알아요.네. 전부 수작업이기 때문에. 수작업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잖아요.염료를 끓이고 식물을 물에 이렇게 담가놓고 또 가마솥도 사용하시더라고요.가마솥을 사용하는 거는 이유가 있죠. 철 매염제를 대신해서 그 가마솥에서 나오는 철분을 이용하는 거죠.아, 철 매염제가 어떤 역할을 하나 보네요.그렇죠. 철 매염제를 따로 쓰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가마솥을 이용하는 거죠.그럼 가마솥에서 충분히 철분이 나오나봐요.나오죠.와 신기하네요. 그러면 염색을 하실 때 엄격하게 지키시는 본인만의 지침이 있으신가요.아까 얘기했듯이 절대로 화학 성분이 들어간 염료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또 가능하면 제주도의 내 주변에서 얻어지는 모든 재료를 이용해서 하자. 예를 들면 아까 얘기한 것처럼 철매염을 대신해서 가마솥을 이용한다든가 또 산을 지나다 보면 제주도에 난개발하는 데도 많고 개발하는 데가 많잖아요. 그런데 절개지를 가보면 지층이 굉장히 심해요. 노란색, 빨간색, 검은색 다 있거든요. 거기에서 흙을 가져다가 매염제로 사용한다든가 하죠.그러면 자연 염료에서 얻을 수 없는 색깔을 혹시 의도해서 만들고 싶을 때는 화학 염료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안해보셨나요.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죠.예를 들어서 화가라고 생각하면 팔레트가 한정돼 있는 그런 상황이신데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아쉬운 게 있기는 있죠. 밝은 색을 낼 때는 그냥 명반 같은 거를 사용해야 된다든가 그런 점은 있어요. 대신 저는 반복해서 여러 번 염료에 담갔다 뺐다 반복해요. 또 그래서 밝은 색을 많이 안 하죠.좀 진한 색 위주로 하시는 군요. 색깔을 보면 좀 다른 톤들이 많이 섞여 있어도 하나같이 어우러지는 그런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지금 행거에 걸려있는 옷들만 봐도 진짜 한 사람의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색깔이 되게 잘 어우러져 보이거든요.그게 천연 염색의 맛이죠. 매력. 자연에서 얻었기 때문이죠.그럼 작업을 하실 때 이제 이건 완성이 됐다라고 딱 점을 찍을 수 있는 선생님만의 어떤 경계가 있으실까요.손으로 만지면서 보이는 색이 마음에 들 때는 거기에서 딱 중단하죠.말리는 과정이나 아니면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색깔이 변하기도 할 것 같아요.변하죠. 근데 이제 경험에서 얻어지는 건데요. 거의 맞죠 이제는.주제에 맞게 재료나 소재를 선택하시는 데 있어서 선생님만의 기준이나 노하우 같은 게 있으시면 조금 알려주세요.예를 들어서 바다를 표현하고 싶다면 어떤 재료를 고르는지.사실 제가 어렸을 때는 이 좋은 자연에 있으면서도 자연이 아름답다라든가 그런 건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살았죠. 근데 떠나 있다가 다시 들어왔을 때 그 무한한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너무 진짜 충격적이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정말 차를 타고 운전을 하면서 김영 쪽 바닷가를 다니고 한라산 가까이까지 가서 막 공사판에 있는 그 흙들의 모양이라든가 식물의 모양을 다 둘러보고 가져다가 테스트해보고 그랬어요. 그런 과정에서 아 이것은 이랬구나 저것은 저랬구나 하면서 공부가 된 거죠. 자연스럽게.좀 다른 얘긴데, 고향이 제주도시니까 제주도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장소도 궁금해요.저는 김영의 바닷가를 좋아해요.자주 가시나요?자주 가죠. 뭐 예전에는 진짜 일주일이면 한 서너 번 갔는데 지금은 뭐 일주일에 한두 번. 그리고 매일 시간에 따라서 환경이 다르니까.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이제 작업을 안 하니까 중산간 더 위쪽으로 숲길 그런 데를 가서 본다든가 하죠. 그런 데서 많이 공부가 돼요.여기 와산에는 오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우연치 않게 왔어요. 우연치 않게 아는 사람의 소개로요. 뭐 제가 어렸을 때는 이런 동네가 있는 것조차도 몰랐죠. 그때는 정말 그야말로 깡촌이었기 때문에. 근데 지금은 많이 외지에서 사람들이 와서 살고 많이 달라지고 있죠 조금. 어떤 의미에서는 가슴 아픈 일일 수도 있어요. 환경이 너무 급격히 달라져 있기 때문에. 제가 초기에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주변에 집이 하나도 없고 정말 수행자 같은 생활을 했었는데 지금은 주변에 집들이 많이 생겨서 저로서는 별로 반가운 일은 아니죠.여기 집을 자리 잡으실 때 주변의 어떤 환경이나 뭐 예를 들어서 염료로 쓰실 만한 재료들을 염두하고 오신 건 아니신가요?그때만 하더라도 이쪽에 집들이 없었기 때문에 무한했죠. 지금은 여기에서 조금 더 차를 타고 올라가야 돼요. 그때는 뭐, 대단했죠.제가 그냥 선생님 작업하시는 내용들만 들어봐도 익혀야 할 게 너무 많게 느껴지거든요. 예를 들어서 소재라든지 소재가 염색이 됐을 때 어떻게 바뀌는지또 식물에는 어떤 종류가 있고 어떤 색깔을 내는지 하는 것들이요. 이 방대한 양을 익히시는데 진짜 많은 수고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다 연륜이라는 거겠죠. 경험치에서 얻어지는 거기 때문에. (염색을 한지) 오래 됐잖아요. 하하.너무 멋있습니다. 이제 향후 계획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화학 염료를 거부하시고 자연주의적인 작업을 하시잖아요.아까 말씀하셨듯이 난개발이나 우후죽순으로 이루어지는 개발들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해요.지금 환경 문제가 굉장히 커다란 주제가 되고 있잖아요.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뭐 제주도만이 아니죠. 전 세계적으로 환경 문제는 중요하죠. 세상을 많이 산 우리 세대에서는 더더욱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씩 전시를 하고 있어요. 제가 만든 옷들을 전시하고 천연 염색에 대한 홍보도 되죠. 돈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환경 문제의 측면에서 천연의 소중함, 자연의 소중함 이런 것들을 많이 알리고 싶어요. 다음 달에 또 전시가 있고요. 열심히 해야죠. 환경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니까요.그럼 그런 이슈들에 좀 많이 관심을 두고 계시겠네요.그럼요. 저희들이 관심 갖지 않으면 누가 갖겠어요.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그래도 환경 문제를 고민하고 활동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굉장히 다행인 일이긴 해요. 어릴 때부터 습관화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점점 젊은 친구들이 많이 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저희 세대는 물론 당연하게 관심을 갖고 해야 되는 일이죠.맞아요. 의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되게 크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 옷들을 봤을 때는 자연에서 얻어진 소재이기 때문에 잘 썩고 또 오랫동안 입을 수 있고요.이런 의미에서 되게 환경 문제에서 좋은 해결 방법이 될 수 있겠어요.그렇죠. 저 같은 경우에는 특히 실크도 물론 조금씩 쓰고 있지만 가능하면 린넨 종류 삼배라든가 순수 린넨, 햄프 이런 종류 많이 쓰니까요. 나일론 성분이 들어있는 거는 천연 염색을 할 수 없는 거니까. 그런 부분도 굉장히 크게 염두에 두죠.그러면 최근에 좀 관심을 두거나 아니면 공부하고 계시는 이슈나 그런 사항들이 있으시면 소개해주세요.최근에 특별히 공부하는 건 아니고 이 작업을 하면서 쭉 염두에 두고 온 거는 정말 순수하게 천연이어야 된다는 거. 힘들죠. 많이 힘들죠. 오롯이 수작업이니까요. 이렇게 손에 뼈가 막 나올 정도로 일을 해야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뭐 크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에요. 어차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여기에 미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 마음은 변함없이 이어가야겠죠.선생님이 살아오신 세상을 생각해보면 여성으로서 어떠한 일들을 진취적으로 해내는 데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또 이런 일차원적인 노동이랄까요. 뭔가를 산에 가서 캐오고 염색을 하는 일은 많은 힘이 들어갈텐데 그런 점에서 어려움에 부딪혔던 경험도 있으실 것 같아요.매번 어렵지만 저 같은 경우는 어떤 물질적인 목표로 이 일을 시작한 게 아니라 취미에서부터 시작해가지고 오늘까지 하다 보니까 이렇게 시간이 지났어요. 하다 보니까 좋아서, 더 좋아서 이렇게 쭉 이어져 왔기 때문에 크게 어렵다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평소에는 손가락이 아프고 하다가도 작업을 할 때는 또 그런 생각 없이 하죠. 나이에 맞게 조금씩 조금씩 하죠. 뭐 죽는 날까지 할 것 같은데요? 이 일을 처음 시작하셨을 때 주변에 만류하시거나 아니면 반대로 도와주시거나 했던 분들도 계실까요.주변에서 만류한 일은 없었고요. 제가 하는 방식이 독특하다고 가르쳐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조금씩 조금씩 가르쳐주고 했죠. 또 지금은 제가 하는 작업으로 만들어진 원단을 이용해서 해외에 나가서 패션쇼를 하는 디자이너들이 몇 명 있어요. 거기에 제가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해요. 국의선양을 하고 있구나 하고요.지금 이야기 나온 김에 자연 염료를 통한 염색 산업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무한한 발전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지금 세계 명품사들이 천연 염색에 눈을 떠서 벌써 몇 년 전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죠. 대량 생산이 되는 게 아니니까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옷 이라는 점에서도 강점이 있고요. 나만의 것이잖아요. 앞으로는 굉장한 발전이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의상학이나 섬유학을 공부하는 젊은 분들도 천연 염색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 이러니까요. 굉장히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마지막 질문인데요. 혹시 앞으로 계획이나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 같은 게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다음 달에 제가 전시를 해야 되니까 지금 한참 준비 중이고 또 이제 해외에 패션쇼 나갈 친구들이 주문해 놓은 컬러가 있기 때문에 그것도 조금 신경 써야 하고요. 매해 거의 그런 식으로 일년 내내 작업해서 한 번 전시하는 거에 또 중점을 두고 있고 그렇죠.장기적인 계획도 궁금한데요.의식 속에서 사는 날까지는 내가 이 작업을 계속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공부를 하고 있어요. 항상 디자인 공부도 해야 되고 여러 가지 색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해야 하죠. 공부할 게 많죠.철 매염제를 대신해 가마솥을 사용한다는 장현승은 자연 곳곳의 색으로부터 자신의 색을 찾는다. 자신의 이름을 찾는다. 이제는 충분히 색을 예상할 정도의 연륜이 쌓였지만 그는 계속해서 공부하기로 다짐한다. 디자인과 색 그리고 아마도 마음까지 공부할 것이다. 그의 말처럼 자연의 색을 빌려 염색하는 일에는 날씨나 소재, 염료 뿐만 아니라 작가의 마음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을 묻는 그가 찾아가는 색도 나날이 깊어질 것이다.
Interview
JUL 28, 2022
모태에서 자연으로의 순환, 몸의 기도 : 김미숙
KIM MISUK
인터뷰를 위해 김미숙을 만난 건 제주도에서 해녀가 가장 많다는 진모살이란 곳이었다. 긴 모래사장이라는 뜻의 진모살을 쭉 돌며 그는 그곳에 관해, 그곳의 사람들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그가 어촌계 사람들과 투닥거리며 대화를 나누면서도 살갑게 구는 모습을 보며 그가 궁금해졌다.  지난 번에 먼저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을 자주 언급하셨어요. 자연과 특별한 교감을 했던 사례가 있으신가요?2017년 제1회 제주 비엔날레에 참여했어요. 관객과 무용수가 트래킹하듯 공간을 함께 걸으면서 하는 공연이었죠. 그 날 제주도 전역에 비가 왔고 바람도 굉장히 많이 불었어요. 인트로 부분에 잠깐 비가 내려 관객들은 우산을 들었고요.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잔뜩 낀 상태였어요. 제가 자연에서 작업을 할 때는 기후 변화에 신경을 많이 써요. 그런데 그 영역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하게 준비를 하지만 자연이 도와주질 않으면 공연이 취소되기도 하죠. 그런데 지금까지 자연이 잘 도와줘서 공연이 성사됐고요. 그 날도 정말 신비롭게 비가 멈추고, 바람이 불지 말아야 할 부분에서는 바람이 멈춰주었어요. 덕분에 성공리에 공연을 잘 마무리 했던 경험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작업을 할 때 정과 성을 다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거든요. 늘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지만 그 기도만으로가 아니라 작업 자체가 기도이기도 하죠.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에서부터 작업에 이르기까지 몰입하는 게 정과 성을 다하는 거더라고요. 특별히 더 제주도는 섬이라 하늘과 땅, 자연과 자연스럽게 통하는 것 같아요.아침에 기도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아침에는 어떻게 몸을 푸시나요?일단 새벽 4시에 일어나요. 저희 집 옥상에 텃밭을 꾸려 몇가지 채소를 기르는데, 하늘 우영팟(’텃밭’의 제주 방언)이라고 이름도 붙였어요. 일어나면 그 옥상에 먼저 올라가요. 물을 주고, 물을 주기 전에 잠시 감사의 마음으로 손을 합장해 인사를 나눠요. 요즘에는 옥상에서 명상도 하고 경행(승려가 좌선 중에 졸음이 오거나 피로할 때에 심신을 가다듬기 위하여 경문을 외면서 일정한 장소를 조용히 걷는 행보)도 하거든요. 제가 춤을 추는 사람인지라 몸 관리를 잘 해야하잖아요. 그래서 워밍업을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그리고 나서 기도도 하고 그렇게 해요. 위에서 말했듯이 또 기도와 춤이 따로가 아니라 작업 자체가 저에게는 기도이기도 해요.그럼 작업을 하면서 어떤 마음을 품으세요?대체로 사람은 종교를 갖고 있잖아요. 젊었을 때는 종교가 있으면 내가 두렵거나 나약할 때 힘이 되준다는 생각으로 교회나 절을 갔어요. 40대 중반에 들어 자연과 함께 작업을 하다보니 절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부처의 상이 있는 절만이 종교의 성체가 아니라 자연 자체가 근원이고 본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신앙심, 그 신심이란 게 자연과 진정으로 소통이 됐을 때 제대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몸짓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표현하시는 걸까요?그동안은 제가 어떤 종교적인 색체를 가지고 하진 않았는데요. 제가 불자이다보니 늘 기도생활을 해왔고, 제주도의 역사, 제주를 대표하는 해녀, 제주의 자연이 작업의 주제이기도, 소재이기도 하잖아요. 불교를 종교로 느끼지 않고 철학이라고 생각을 해요. 불교의 철학을 제 작업과 함께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볼교 철학이라고 할까요. 종교를 넘어서 하나의 삶의 지침으로 여기시는 것처럼 느껴지네요.그렇죠. 삶, 종교, 작업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불교의 철학이 저의 근원이자 본질이더라고요. 그것을 밑바탕으로 두고 있으니 아무래도 작업에 그 색이 나오겠죠.무용을 하다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을텐데, 그런 것들을 극복해내는 원동력이나 동기가 있나요?저는 원래 몸이 약했어요. 어릴 때부터 병약했죠. 지금도 아프면 이겨내기가 힘들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춤이라는 것 때문에 제가 숨쉬는 것 같아요. 작업할 때는 아픈 것도 모르고 몰입하거든요. 만약 제가 춤을 추지 않았다면 늘 병치레를 하며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춤에서 오는 고통을 춤으로 승화시키시는 거네요. 그럼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이슈나 주제가 있으실까요?늘 기도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참선으로 가는 게 최종 목표가 아닐까 했는데요. 요즘 자연스럽게 연이 닿아서 명상을 하게 됐어요. 저의 일상은 늘 춤과 연결이 되어왔는데 명상을 하면 그 깊이가 제 춤 안에 녹아들 것 같아서, 기존의 작업과 다르게 흘러갈 것 같아요.그럼 관심을 두시는 주제가 명상이라고 보면 될까요?불교 철학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명상이라기보다는. 참선으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써의 명상이죠.지난 번에 이야기할 때, 평화나 더불어 사는 것, 자연 안에서 하나되는 것 이런 메시지를 강조하셨던 것 같은데, 그런 키워드들이 본인에게 영향을 주는 건가요?자연이라는 게 ‘그러함’이잖아요. 있는 그대로, 그러함 그대로, 여여하게 있어야할 것들, 자연스럽게 흘러야할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인간이 폭력적으로 바꾸려고 하죠. 역사적으로 큰 상처를 남기고. 특히 제주도는 아픔이 많은 곳이에요. 예술가의 입장에서 저는 춤으로 그 아픔을 같이 느낄 수가 있죠. 그런데 표현 이전에 저는 자연 속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관객, 춤꾼으로 나뉘지 않고 궁극적으로 하나되어가고 그 숨결을 느끼면서 그 자체가 상생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4.3 같은 경우도 제가 안무를 하다보면 오히려 추상적인 작품보다 더 와닿는다는 것을 서로 느끼거든요. 지금도 많이 부족해요. 그래도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대로 계속 정과 성을 다하다보면 그 합점을 찾아가면서 춤과 제주의 아픔이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최근에 하신 활동 중에 장애인 분들과 함께 하신 활동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제가 장애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춤을 계속 추면서 굉장히 공감을 하게 돼요. 장애에. 그동안 작업해왔던 것을 문화예술교육으로 풀어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가능한 대상 분석을 철저하게 해서 가거든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거나, 교수학습 계획서를 구상할 때 그동안 해왔던 작업을 바탕으로 해서 그분들에게 가서 풀어내고 했었죠. 그와 같은 경험이 작다면 작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하죠. 시각장애인 분들과 같이 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지점이 있으세요?새로운 공간에 두려움이 있으세요. 그런데 돌봐주시는 선생님들이 옆에 항상 계시는 건 아니거든요. 이번 같은 경우는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옆에 선생님들이 손과 발이 되어줄 수는 없다. 대신 진하진 않지만, 강하진 않지만 빛이 되어서 마음을 나눌 수는 있다. 선생님들을 믿어달라 말씀드리죠. 제가 그분들께 나누고 싶은 것은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죠.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혼자 움직일 수 있어야 춤을 출 수 있으니까요.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요.해녀 작업을 중점으로 하셨었는데, 제가 해녀 작업에 대해서 안여쭤본 것 같아요.제주도에는 바다에 가보면 늘 해녀들이 계세요. 제가 어렸을 때도 늘상 봐왔죠. 가족 중에 해녀가 있지는 않아요. 그런데 제가 춤을 추다보니까 해녀 춤을 접하게 됐고요. 69년, 그러니까 60년대 말에 고 송근우 선생님이 해녀 작품을 만드시고 그게 계속 이어지면서 제자들이 계속 그 춤을 추고 있는데요. 저 역시도 도립 무용단에 창단 멤버이기도 하고 그곳에서 훈련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해녀 작품으로 조합무를 많이 했었습니다. 어느날 해녀 작품을 올려서 공연을 하는데 누군가 지나가면서 얘기하더라고요. 저렇게 해녀 춤을 추는 무용수들이 해녀 태악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나? 라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죠. 저 역시도 해녀들이 물질할 때 드는 태악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거죠. 그 얘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한번 태악을 들어보니 그렇게 쉽게 춤을 출 수 있는, 아름답고 고고하게 출 수 있는 무게가 결코 아니었어요. 그럼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해녀 작업은 뭐지? 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했고, 자연과 벗 삼아서 하다보니 해녀 작업은 무대보다 해녀들이 작업하는 바다에서 공연으로 올려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에서부터 시작해서 무대로 가야하는데 그동안은 역행이었던 거죠. 그래서 제 해녀 작품은 해녀 삼춘들과 인터뷰도 하고 그 다음에 리서치를 기반으로 해서 작품 안에 다른 분들의 해녀 작품과는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해녀분들의 동작에서부터 춤이 만들어지는 거죠?작년에 리서치 팀이 따로 구성이 되었어요. 해녀 삼춘들이 바다에서 우뭇가사리는 어떻게 잡고, 미역은 어떻게 베고, 소라와 성게는 어떻게 따는지를 손 동작을 다 보여주셨어요. 그걸 바탕으로 해녀 체조를 만들었어요. 오히려 해녀 삼춘들이 설명도 없는데도 동작을 보시면서 저건 우뭇가사리, 저건 소라, 저건 성게 하시면서 계속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의도치 않게 그런 교류가 있었죠.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댄스가 되어서 현장에서 다들 좋아하셨어요. 특히 해녀분들이 굉장히 좋아하셔서 해녀 체조는 앞으로 보급을 시켜야겠다는 생각도 해요.차기작으로 준비하고 계시는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2022년도, 올 해 해녀 작업을 작년에 이어서 했어야 됐어요. 그런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접게 됐어요. 해녀는 제가 꾸준히 해왔던 것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할 거고요. 조금 전에 제가 얘기했지만 불교의 철학을 그동안 해왔던 작업 안에 다시 바탕이 돼서 새로운 작업으로 만들어나갈 것 같아요. 앞으로 한다면 그 안에는 불교 철학이 놓여있을 것 같습니다.
MEDITATION
DAEJEONG HYANGGYO
대정향교 (大靜鄕校)
165-17 Hyanggyo-ro, Andeok-myeon, Seogwipo-si, Jeju-do
NOV 28 2022
WE
DISCOVER THE
UNDISCOVERD
INNOVATORS
AND CREAT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