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모태에서 자연으로의 순환, 몸의 기도 : 김미숙
KIM MISUK
Gujwa, Jeju-do,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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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위해 김미숙을 만난 건 제주도에서 해녀가 가장 많다는 진모살이란 곳이었다. 긴 모래사장이라는 뜻의 진모살을 쭉 돌며 그는 그곳에 관해, 그곳의 사람들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그가 어촌계 사람들과 투닥거리며 대화를 나누면서도 살갑게 구는 모습을 보며 그가 궁금해졌다.  


지난 번에 먼저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을 자주 언급하셨어요. 자연과 특별한 교감을 했던 사례가 있으신가요?

2017년 제1회 제주 비엔날레에 참여했어요. 관객과 무용수가 트래킹하듯 공간을 함께 걸으면서 하는 공연이었죠. 그 날 제주도 전역에 비가 왔고 바람도 굉장히 많이 불었어요. 인트로 부분에 잠깐 비가 내려 관객들은 우산을 들었고요.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잔뜩 낀 상태였어요. 제가 자연에서 작업을 할 때는 기후 변화에 신경을 많이 써요. 그런데 그 영역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하게 준비를 하지만 자연이 도와주질 않으면 공연이 취소되기도 하죠. 그런데 지금까지 자연이 잘 도와줘서 공연이 성사됐고요. 그 날도 정말 신비롭게 비가 멈추고, 바람이 불지 말아야 할 부분에서는 바람이 멈춰주었어요. 덕분에 성공리에 공연을 잘 마무리 했던 경험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작업을 할 때 정과 성을 다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거든요. 늘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지만 그 기도만으로가 아니라 작업 자체가 기도이기도 하죠.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에서부터 작업에 이르기까지 몰입하는 게 정과 성을 다하는 거더라고요. 특별히 더 제주도는 섬이라 하늘과 땅, 자연과 자연스럽게 통하는 것 같아요.


아침에 기도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아침에는 어떻게 몸을 푸시나요?

일단 새벽 4시에 일어나요. 저희 집 옥상에 텃밭을 꾸려 몇가지 채소를 기르는데, 하늘 우영팟(’텃밭’의 제주 방언)이라고 이름도 붙였어요. 일어나면 그 옥상에 먼저 올라가요. 물을 주고, 물을 주기 전에 잠시 감사의 마음으로 손을 합장해 인사를 나눠요. 요즘에는 옥상에서 명상도 하고 경행(승려가 좌선 중에 졸음이 오거나 피로할 때에 심신을 가다듬기 위하여 경문을 외면서 일정한 장소를 조용히 걷는 행보)도 하거든요. 제가 춤을 추는 사람인지라 몸 관리를 잘 해야하잖아요. 그래서 워밍업을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그리고 나서 기도도 하고 그렇게 해요. 위에서 말했듯이 또 기도와 춤이 따로가 아니라 작업 자체가 저에게는 기도이기도 해요.


그럼 작업을 하면서 어떤 마음을 품으세요?

대체로 사람은 종교를 갖고 있잖아요. 젊었을 때는 종교가 있으면 내가 두렵거나 나약할 때 힘이 되준다는 생각으로 교회나 절을 갔어요. 40대 중반에 들어 자연과 함께 작업을 하다보니 절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부처의 상이 있는 절만이 종교의 성체가 아니라 자연 자체가 근원이고 본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신앙심, 그 신심이란 게 자연과 진정으로 소통이 됐을 때 제대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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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표현하시는 걸까요?

그동안은 제가 어떤 종교적인 색체를 가지고 하진 않았는데요. 제가 불자이다보니 늘 기도생활을 해왔고, 제주도의 역사, 제주를 대표하는 해녀, 제주의 자연이 작업의 주제이기도, 소재이기도 하잖아요. 불교를 종교로 느끼지 않고 철학이라고 생각을 해요. 불교의 철학을 제 작업과 함께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볼교 철학이라고 할까요. 종교를 넘어서 하나의 삶의 지침으로 여기시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렇죠. 삶, 종교, 작업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불교의 철학이 저의 근원이자 본질이더라고요. 그것을 밑바탕으로 두고 있으니 아무래도 작업에 그 색이 나오겠죠.


무용을 하다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을텐데, 그런 것들을 극복해내는 원동력이나 동기가 있나요?

저는 원래 몸이 약했어요. 어릴 때부터 병약했죠. 지금도 아프면 이겨내기가 힘들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춤이라는 것 때문에 제가 숨쉬는 것 같아요. 작업할 때는 아픈 것도 모르고 몰입하거든요. 만약 제가 춤을 추지 않았다면 늘 병치레를 하며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춤에서 오는 고통을 춤으로 승화시키시는 거네요. 그럼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이슈나 주제가 있으실까요?

늘 기도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참선으로 가는 게 최종 목표가 아닐까 했는데요. 요즘 자연스럽게 연이 닿아서 명상을 하게 됐어요. 저의 일상은 늘 춤과 연결이 되어왔는데 명상을 하면 그 깊이가 제 춤 안에 녹아들 것 같아서, 기존의 작업과 다르게 흘러갈 것 같아요.


그럼 관심을 두시는 주제가 명상이라고 보면 될까요?

불교 철학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명상이라기보다는. 참선으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써의 명상이죠.


지난 번에 이야기할 때, 평화나 더불어 사는 것, 자연 안에서 하나되는 것 이런 메시지를 강조하셨던 것 같은데, 그런 키워드들이 본인에게 영향을 주는 건가요?

자연이라는 게 ‘그러함’이잖아요. 있는 그대로, 그러함 그대로, 여여하게 있어야할 것들, 자연스럽게 흘러야할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인간이 폭력적으로 바꾸려고 하죠. 역사적으로 큰 상처를 남기고. 특히 제주도는 아픔이 많은 곳이에요. 예술가의 입장에서 저는 춤으로 그 아픔을 같이 느낄 수가 있죠. 그런데 표현 이전에 저는 자연 속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관객, 춤꾼으로 나뉘지 않고 궁극적으로 하나되어가고 그 숨결을 느끼면서 그 자체가 상생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4.3 같은 경우도 제가 안무를 하다보면 오히려 추상적인 작품보다 더 와닿는다는 것을 서로 느끼거든요. 지금도 많이 부족해요. 그래도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대로 계속 정과 성을 다하다보면 그 합점을 찾아가면서 춤과 제주의 아픔이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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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하신 활동 중에 장애인 분들과 함께 하신 활동을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가 장애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춤을 계속 추면서 굉장히 공감을 하게 돼요. 장애에. 그동안 작업해왔던 것을 문화예술교육으로 풀어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가능한 대상 분석을 철저하게 해서 가거든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거나, 교수학습 계획서를 구상할 때 그동안 해왔던 작업을 바탕으로 해서 그분들에게 가서 풀어내고 했었죠. 그와 같은 경험이 작다면 작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하죠. 


시각장애인 분들과 같이 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지점이 있으세요?

새로운 공간에 두려움이 있으세요. 그런데 돌봐주시는 선생님들이 옆에 항상 계시는 건 아니거든요. 이번 같은 경우는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옆에 선생님들이 손과 발이 되어줄 수는 없다. 대신 진하진 않지만, 강하진 않지만 빛이 되어서 마음을 나눌 수는 있다. 선생님들을 믿어달라 말씀드리죠. 제가 그분들께 나누고 싶은 것은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죠.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혼자 움직일 수 있어야 춤을 출 수 있으니까요.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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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작업을 중점으로 하셨었는데, 제가 해녀 작업에 대해서 안여쭤본 것 같아요.

제주도에는 바다에 가보면 늘 해녀들이 계세요. 제가 어렸을 때도 늘상 봐왔죠. 가족 중에 해녀가 있지는 않아요. 그런데 제가 춤을 추다보니까 해녀 춤을 접하게 됐고요. 69년, 그러니까 60년대 말에 고 송근우 선생님이 해녀 작품을 만드시고 그게 계속 이어지면서 제자들이 계속 그 춤을 추고 있는데요. 저 역시도 도립 무용단에 창단 멤버이기도 하고 그곳에서 훈련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해녀 작품으로 조합무를 많이 했었습니다. 어느날 해녀 작품을 올려서 공연을 하는데 누군가 지나가면서 얘기하더라고요. 저렇게 해녀 춤을 추는 무용수들이 해녀 태악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나? 라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죠. 저 역시도 해녀들이 물질할 때 드는 태악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거죠. 그 얘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한번 태악을 들어보니 그렇게 쉽게 춤을 출 수 있는, 아름답고 고고하게 출 수 있는 무게가 결코 아니었어요. 그럼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해녀 작업은 뭐지? 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했고, 자연과 벗 삼아서 하다보니 해녀 작업은 무대보다 해녀들이 작업하는 바다에서 공연으로 올려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에서부터 시작해서 무대로 가야하는데 그동안은 역행이었던 거죠. 그래서 제 해녀 작품은 해녀 삼춘들과 인터뷰도 하고 그 다음에 리서치를 기반으로 해서 작품 안에 다른 분들의 해녀 작품과는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해녀분들의 동작에서부터 춤이 만들어지는 거죠?

작년에 리서치 팀이 따로 구성이 되었어요. 해녀 삼춘들이 바다에서 우뭇가사리는 어떻게 잡고, 미역은 어떻게 베고, 소라와 성게는 어떻게 따는지를 손 동작을 다 보여주셨어요. 그걸 바탕으로 해녀 체조를 만들었어요. 오히려 해녀 삼춘들이 설명도 없는데도 동작을 보시면서 저건 우뭇가사리, 저건 소라, 저건 성게 하시면서 계속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의도치 않게 그런 교류가 있었죠.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댄스가 되어서 현장에서 다들 좋아하셨어요. 특히 해녀분들이 굉장히 좋아하셔서 해녀 체조는 앞으로 보급을 시켜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계시는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2022년도, 올 해 해녀 작업을 작년에 이어서 했어야 됐어요. 그런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접게 됐어요. 해녀는 제가 꾸준히 해왔던 것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할 거고요. 조금 전에 제가 얘기했지만 불교의 철학을 그동안 해왔던 작업 안에 다시 바탕이 돼서 새로운 작업으로 만들어나갈 것 같아요. 앞으로 한다면 그 안에는 불교 철학이 놓여있을 것 같습니다.





Im say 에디터
JUL 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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