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서의 틈으로 내뱉는 일획 : 박이남
PARK INAM
Bonggae, Jeju-do,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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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제주도의 한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피리 연주가이자 창작가인 박이남을 만났다. 겸손과 유머를 겸비한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에도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직접 타주신 아이스 커피를 받아들고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편안하면서도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주도에서 피리로 여러 작품 활동하고 있는 박이남이라고 합니다.



음악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음악에 흥미를 갖게 된 핵심적인 영향은 무엇이었나요?

가족들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음악을 자주 접할 수 있었어요. 초등학생 때 저희 집에 음악 테이프가 200개는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생이었던 누님과 형님이 즐겨 듣던 테이프였는데, 덕분에 초등학생 때부터 이문세, 산울림 같은 가요와 포크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던 거죠. 저희 아버님도 특이하신 분이셨어요. 택시 기사셨는데 운전하실 때면 항상 클래식 음악을 들으셨죠. 저는 당시만 해도 가사도 없고 악기 소리만 나는 음악을 왜 듣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영향으로 음악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클래식이나 포크 음악을 즐겨 듣다 어떤 계기로 국악을 하게 되었나요?

제가 학생일 때만 해도 국악이나 전통 악기는 교과서에서도 보기 힘들었어요. 그만큼 국악을 접할 기회가 적었는데, 대학 시절 우연히 잔디밭에서 장구 치는 사람을 보게 됐어요.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그렇게 장구를 배우고 꽹과리를 거쳐 태평소를 배우게 됐어요. 태평소를 연주하면서 저에게 선율악기가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한창 태평소를 불 때 누가 그러더라고요. 태평소를 잘 불기 위해서는 피리를 배워야 된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피리를 배우러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어요. 처음 피리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태평소에 비해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폭이 정말 크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모든 걸 쏟아부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평소를 잘 불기 위해 시작한 피리가 전공이 되신 거네요. 어떤 부분에서 피리의 매력을 느끼셨나요?

저희 선생님 말씀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피리는 ‘바람 부는 악기 중에서는 가장 사람 목소리와 비슷한 악기’에요. 거칠고 카랑카랑한 음색에 피아노부터 포르테까지의 폭이 크고, 누르는 소리, 밀고 당기는 소리같이 다양한 아티큘레이션에서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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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음악에서 사용하는 목관악기와 비교했을 때 한국 피리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나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목관악기만 두고 봤을 때, 추구하는 톤이 다른 것 같아요. 서양악기는 미성, 동그랗고 맑은 톤을 추구한다면 국악기는 탁성, 거칠고 카랑카랑 한 톤을 추구한다고 할까요?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서양음악은 감상하면서 즐기는 음악이라면 국악은 듣는 음악을 넘어서 직접 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국악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그 즐거움을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단순히 우리 것이 좋다는 이야기로 현상만 유지한다면 국악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돼요.


피리를 늦게 시작하신 만큼 배우실 때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지금은 돌아가셔서 안계시지만 저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세요. 선생님도 참 특이한 분이셨는데, 레슨비도 받지 않으시고 악기도 다 만들어 주셨어요. 대신 ‘왜 피리하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가르쳐주지 않으셨어요. 저는 ‘그냥 재밌어서요’라는 대답으로 레슨을 받을 수 있었죠. 선생님께서는 늦게 피리를 시작한 제게 새로운 가르침을 많이 주셨어요.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는 법부터 동양화를 보는 법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제 그릇을 깰 수 있도록 도와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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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 보는 법을 배웠다는 게 재미있네요. 동양화를 보는 것이 연주하는 데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저는 다른 악기들과 같이 연주할 때면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해요. 누구는 굵은 나뭇가지를 치고, 누구는 잔가지, 누구는 꽃, 그리고 누구는 재잘거리는 새를 그리는 거죠. 그 안에서 제가 맡은 장면을 먹의 농도, 선의 굵기로 표현하듯이 소리를  연주해요.



연주를 하거나 창작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일화가 있나요? 

서울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다 2009년 정도에 다시 제주로 내려왔어요. 제주로 내려오면서 하고 싶었던 일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 실내악 창작공연을 만드는 것도 있었어요. 그렇게 3년 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실내악 팀을 만들었고, 100퍼센트 창작음악으로 공연을 올리게 되었죠. 그때 처음으로 제 곡을 써봤어요.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음악이 아닌 내 생각과 감정을 담아 곡을 쓰고 연주한 게 처음이었죠. 직접 곡을 연주하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볼 수 있었던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누군가의 계기를 듣는 일은 마음을 새롭게 한다. 또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영감이 되기도 한다. 박이남이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계속한 이야기는 자신을 끌어당기는 마음의 소리를 따라 몸과 삶을 움직이는 한 사람의 용기였다. 장구와 꽹과리, 태평소를 거쳐 피리에 이르게 된 것은 아마도 그가 하고 싶은 얘기가 많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바람 부는 악기 중 가장 사람의 소리를 닮은 피리를 통해 그가 그려나갈 앞으로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Im say 에디터
JUL 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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