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선으로 긋는 한계와 가능성 : 이동수
LEE DONGSU
Hogeun-Dong, Seogwipo-si, Jeju-do
손을 놓을 때 완성되는 그림 : 이동수
Hogeun-Dong, Seogwipo-si, Jeju-do
안녕하세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그림을 전공했고 서울에서 쭉 살다가 지금은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이동수입니다.
주로 어떤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나요?
옛날에는 추상 표현 계열의 작품을 주로 했어요. 추상 표현 계열이라고 하면 주로 잭슨 폴록이 있죠. 바스켓의 물감을 캔버스에 그냥 들이붓는 식이죠. 러시아의 화가 말레비치는 기하학적 도형만을 이용해서 추상계열 작업을 했고요. 제 작품은 그 두 개를 섞은 듯한, 그러니까 추상표현주의하고 기하학적 추상표현주의하고 섞어 그림을 그린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림에 주로 표현하고자 하는 지향점 같은 게 있으실까요?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요. 산이 어떻게 형성 됐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죠. 보통 산을 삐죽삐죽하게 그리는데 저는 산의 내면을 생각해봤어요. 밑에 마그마도 있고 돌도 있고 물도 있죠. 산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 그리고 그 물질들이 한 데 섞여있는 모양을 바탕으로 표현하려고 했죠. 그런 식으로 산을 이미지화 하는데 또 부분적으로 그런 요소를 사용하기도 했고요. 이 산이라는 작품을 보면 안에 마그마가 타는 듯한, 그런 와중에 또 선을 이용해서 기하학적으로 잘라냄으로 작품에 어떤 그 한계를 좀 주었어요. 그런데 그 한계를 끝까지 두기보다 또 선을 터주기도 해요. 한계를 터줌으로 상호 간의 어떤 교류라고 하는 것들을 좀 표현하기도 했어요. 생명의 기원이라는 작품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부터 생명이 싹 틀 때를 표현한 거에요. 성경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는 구절에서부터 시작했죠. 기독교인으로써 생명이 잉태하는 과정 그런 것들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어요.
두 작품이 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닮을 수밖에 없는 게 과정이 비슷해요. 산이라는 작품은 잭슨 폴록처럼 물감을 막 뿌렸어요. 바닥에 캔버스를 넣고 뿌리는 거죠. 그런데 차이가 있죠. 잭슨 폴록은 오만 가지 색을 다 섞어가지고 무질서하게 뿌려진 것 가운데서도 리듬을 찾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그 무질서가 싫어서 나이프로 다시 평평하게 긁어버려요. 그리고 색감을 없애기 위해서 그 위에 까만색을 다 칠했어요. 그 다음에 롤러를 사용해서 색감 위에 요철을 주죠. 그 위에 다시 선으로 분할하는 작업을 하는 거에요.
그럼 산이나 생명의 근원 같은 크기가 있는 작품들은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시겠네요.
네. 각각 100호, 80호 사이즈의 캔버스를 사용했는데, 저런 거는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게 되죠.
요즘에는 그럼 어떻게,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도 궁금해요.
요즘에는 작업 공간도 없고 (웃음) 그래서 조금 작은 사이즈로 다 줄여가지고 그리고 있습니다. 수채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는데요. 수채화 작업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어디서든지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죠. 물감하고 붓만 있으면 그릴 수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수채화에 매력을 느끼는 중이에요. 본격적으로 또 그림을 그리게 되면 유화 작업을 다시 하겠지만요.
제주도가 좋아서 내려오셨다고 하셨었는데, 제주도의 어떤 부분이 좋으셨어요?
경상도에서 태어나서 국민학교, 그때는 국민학교였거든요. 국민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왔어요. 서울 은평구 쪽에서 살았죠. 서울에서 한 20년 이상을 살았는데 당시에 서울이 되게 추웠어요. 한강도 물이 땅땅 얼기도 했죠. 좀 따뜻한 곳에 가서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한테 물어보니까 제주도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따뜻하다고 그러더라고요. 어릴 때는 혼자 어디 가서 살 수 없으니까 크면 제주도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이후로 제주도 갈 기회가 없었어요. 유럽도 다 갔다오고 호주, 미국도 갔다왔는데 그러면서도 제주도는 와보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한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집사람하고 제주도를 한번 왔는데 여기가 바로 이 천국이구나 싶더라고요. (웃음) 내가 가본 어떤 곳보다도 제주도가 굉장히 이국적이고 또 사람 살기 좋다고 느껴졌죠. 제주도가 나한테 딱이라는 느낌이 든 그때부터 갑자기 제주도에 눌러앉게 된 거죠. 아무 연고도 없이, 무식하게 또 단순하게.
그러면 선생님 작업하실 때 제주로부터 영감을 받으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영감은 제주도에서 정말 많이 받죠. 제주도는 첫 번째로 하늘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하늘이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도 생각하죠. 서울에서만 살다 보니까 매일 뿌연 회색빛 하늘만 바라보다가 제주도에 와서야 하늘이 있다는 걸 알았죠. 유럽도 하늘이 별로 안 예쁘거든요. 호주 정도 가면 좀 예쁘긴 하지만요. 근데 제주도 하늘이 너무 맑고 투명하고 밤에는 별들이 막 쏟아지죠. 하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바닷가를 갔더니 바다도 있는 거에요. 제가 바다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바다가 있으면 저는 무조건 뛰어들어요. 젊었을 때도 동해를 가면 갑자기 차 세워놓고 들어가 놀았죠. 제주도의 바다가 제 바다라고 그때부터 생각했어요. 그럼 여기에 정착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림에 그런 하늘이랑 바다가 딱 같이 나오는 게 이제 보이네요.
네. 제가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하늘과 바다도 많이 그리고 있어요. 제가 또 물속도 좋아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물속도 그리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까 인간의 탄생, 기원과 같은 네러티브를 가지고 작품을 그리셨다고 하셨는데, 그런 부분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사람은 누구든지 철학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어디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내가 왜 뭘 하고 있는가, 왜 화를 내고 있는가, 왜 기뻐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되잖아요. 또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 보니까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찾게 되는 거겠죠. 또 이 지구의 기원에 대해서 찾게 되는 거고요. 그걸 작품 세계 안으로 가져와서 표현하려다 보니까 뭔가 유기적으로 얽히고 설킨 그런 관계들을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생명의 어떤 기원이라든지 이 세상의 어떤 기원에 대해서 답을 얻으신 걸까요?
답을 얻었다기보다는 이 땅에 일부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써 자유롭게 숨 쉬고 자유롭게 행동하면서도 또 나름대로의 규칙을 지키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살아가는 게 인간이 해야할 일이라는 정도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 지구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우리가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의 창조가 하나님의 소관이라고 믿으니까요. 이 세상에 관한 모든 창작 활동은 하나님이 다 해놓으셨다고 생각하죠. 우리를 창작하는 사람들이라고 얘기를 하지만 아무리 창작을 해도 제가 믿는 조물주의 창조성에는 비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림을 보면 검정색 색채가 많은 것 같아요. 농도의 차이도 있겠지만 다양한 깊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표현을 하시는지 방법이 궁금해요. 재료가 달라서 그런 걸까요?
사실 검정색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색이에요. 제주도는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현무암은 전부 다 화산재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까맣잖아요. 까만 것 중에서도 덜 까만 것, 아주 새까만 것도 있죠. 그런 점들을 작품에 담아 내다 보면 또 그런 검은색을 찾게 돼요. 같은 검정색인데도 명도 차이가 조금씩 있죠.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명도 차이를 내기도 해요. 물감에 카세인을 섞어요. 하얀색 카세인인데, 돌가루라고 보면 돼요. 돌가루와 유화 물감 또 기름을 섞어서 사용하죠. 카세인을 많이 넣느냐, 적게 넣느냐에 따라 명도 차이가 조금씩 나게끔 하는 거에요.
어떤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우연의 어떤 과정들을 거치면서 만들어지는 건데, 그럼 결국 완성이라는 게 작가가 그리기를 멈추는 순간이 아닌가 싶어서요.
그림을 그리다가 딱 여기서 멈춰야겠다라고 결정하는 기준을 가지고 계신가요?
작가들마다 그런 기준은 있겠죠. 아무래도 끝까지 가다 보면 그림을 망쳐버리니까요. 특히 우연의 효과를 바라고 할 때는 어느 지점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가 또 감각적으로 내가 어필하고 싶은 걸 만들어냈는가 물어보죠. 그 순간에 멈춰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손은 계속 나가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근데 멈출 수 있을 때 멈춰야 하죠. 작업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옛날에는 그림을 그린다고 했는데 요즘은 그림 그리는 일을 작업한다고 표현 하잖아요. 왜 작업을 한다고 하는지 몰랐어요. 예전에는요. 우리가 건물 짓는 것도, 땅 파는 것도 작업한다고 하잖아요. 작업이란 게 대체 뭘까 생각해봤죠. 건물이 완성되기 전의 과정이 있잖아요. 결과를 내기 전 여러 과정이 있죠. 뭔가를 이루기 전의 단계에서의 일련의 행위를 작업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여기서 멈춰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본인만의 지침이라면 작품의 지금 상태에서 딱 오는 느낌으로 결정을 하시는 거라고 보면 되겠네요.
그렇죠. 작품의 퀄리티는 본인이 제일 잘 알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퀄리티가 여기까지면 거기까지인 거죠. 작가의 역량이라고 볼 수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멈출 때를 아는 것도 또한 자기 작가의 역량일 수 있어요.
요즘 특별히 관심을 두고 계신 주제가 있으신가요?
요즘은 현대 미술이 거의 개념 미술 쪽으로 많이 가고 있다고 봐요. 개념적인 것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중요해지죠. 옛날에는 사진처럼 잘 그리는 그림이 인정 받았다면 요즘은 사진 같이 그리는 그림을 원하는 게 아니고 그 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 또 개념이 중요한 시대인 거죠. 저만의 개념을 정리해서 그림으로 또 화폭으로 나타내보고 싶어요.
앞으로 향후 계획이 구체적으로 있으시다면 여쭤보고 싶어요.
이제 앞으로 그림을 좀 꾸준히, 열심히 그려야 되겠다는 게 향후 계획이에요. 이때까지는 여러 갈래로 돌고 돌았어요. 그림 좀 안 그리고 놀 때도 많이 있었고요. 이제 죽을 때가 다 되어니까 이제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서 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작업을 함으로써 하나의 족적을 남기고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리기를 멈추는 일이기도 하다. 더 그리고 싶은 손에 일부러 한계를 주어 멈추는 순간 그의 그림은 완성된다. 그가 작품에 기하학을 이용해 한계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돌고 돌아 다시 캔버스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는 그에게 여전히 제주의 바다가 있다. 그가 여지 없이 바다로 달려들어 감각했던 물속은 어떤 느낌일까. 그가 앞으로 그릴 물속의 이미지는 바다의 거친 파도 앞에서는 아무래도 발을 멈추게 되는 우리의 한계를 터줄 것이다.
에디터
NOV 10, 2022